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HBR Korea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Inteview: 조지 프리드먼 지오폴리티컬 퓨처스 회장

“전환기, 특정국 의존 과도한 기업은 위험
美에도 中에도 통할 ‘이중전략’ 마련해야”

장재웅 | 417호 (2025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규모 관세 부과 조치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러나 세계적인 지정학 전문가 조지 프리드먼 지오폴리티컬 퓨처스 회장은 미국의 이 같은 정책이 “단순한 돌발적 대응이 아니라 1945년 이후 미국 전략의 ‘재정렬’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세계 질서가 고정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유동성과 리스크가 일상화된 국면으로 진입했으며 한국은 미·중 갈등 구조 속 핵심 연결고리로서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다자주의 약화, 공급망 정치화, 기술 무기화가 본격화되는 환경에서는 ‘조건부 대응 능력’과 ‘전략적 민첩성’이 기업 생존의 핵심 역량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SR_1_1


2025년 2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2기 행정부는 캐나다, 멕시코, 중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관세 부과를 전격 발표하며 글로벌 무역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수입되는 대부분의 상품에 25%의 관세를, 중국산 제품에는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였다. 이어 4월 2일 미국은 주요 교역국 57개국에 최대 50%의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100개국 이상이 무역 충격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글로벌 증시는 즉각적으로 요동쳤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시적 유예 조치를 발표했지만 미국발 보호무역주의의 파고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정책 전환을 두고 국제사회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지정학 분야 석학이자 ‘21세기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리는 세계적인 국제 정세 분석가 조지 프리드먼 지오폴리티컬 퓨처스 회장은 “이번 조치는 결코 단순한 변덕이나 돌발적 대응이 아닌 1945년 이후 미국이 꾸준히 추진해 온 전략의 ‘재정렬(Re-alignment)’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미국은 1945년 이후 세계의 안녕을 책임지는 세계 경찰 또는 패권국으로서의 역할을 지속하는 데 대해 ‘불편함’을 느껴왔다”며 이번 관세 부과 조치는 “미국이 수십 년간 무역 적자 구조를 해결하려 애썼던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즉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은 변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의 국익을 재정의하고, 글로벌 관여의 부담을 줄이며, 국내 경제를 강화하려는 전략의 일부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지정학적 지형 변화와 함께 ‘게임의 룰’이 급격히 변하는 변혁의 시기, 한국 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DBR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프리드먼 회장은 “세계는 고정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유동성과 리스크가 일상화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하면서 “한국은 미·중 간 갈등 구조에서 가장 결정적인 ‘지정학적 연결고리’에 있기 때문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이는 다시 말하면 양측의 이해관계가 바뀔 경우 전략을 전면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라며 “지금이야말로 한국 기업이 ‘국제 질서의 예외적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인식 아래 전략적 리디자인에 나서야 할 시점”임을 강조했다. “공급망이 정치화되고 기술이 무기화되는 시대, 기업의 전략 역시 ‘조건부 대응 능력’에 기반해야 한다”고 말하는 프리드먼 회장으로부터 다자주의 종말의 시대, 한국 기업이 선택해야 할 대응 전략에 대해 들었다.


국제사회에서 다자주의가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제사회에서의 다자주의 약화 현상은 단순한 현상적 해석이 아닌 전략적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세계 2차 대전 직후 유럽은 경제적·군사적으로 초토화된 상태였고, 소련은 공산주의 확산을 명분으로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만약 소련이 대서양에 접근할 경우 미국의 전략적 방어선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상황이었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미국은 ‘마셜 플랜’ 등을 통해 유럽의 경제 재건을 지원하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해 군사적 방어 체계를 구축했다. 이 시기, 유럽 식민제국의 해체로 새롭게 독립한 신생국들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경쟁이 이어졌고 이 구도는 오랜 기간 냉전 구도의 핵심을 이뤘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구조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러시아는 장기간 전쟁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영토의 20% 남짓만을 점령하는 데 그쳤고 그 성과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러시아를 더 이상 주요 군사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게 됐고 세계 안보에 대한 미국의 관여 방식에 근본적인 재검토가 시작됐다. 미국은 이제 자국의 전략적 이익에 따라 외교 정책을 조정하고 있으며 과거처럼 이념적 대립에 기반한 개입을 줄이고 있다. 더 나아가 NATO와 같은 동맹도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즉 미국은 이념 대립이나 세계 안보라는 이름의 ‘보편적 개입’보다는 자국의 전략적 이익에 따른 ‘선택적 개입’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이는 국제 질서와 동맹 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들 역시 이러한 재편의 흐름에 대해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대응 주체가 돼야 한다.

GettyImages-2203386882



다자주의의 몰락과 블록화의 가속화가 글로벌 무역 및 기업 경영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뭘까.

미국이 주도한 무역 시스템은 ‘냉전’이라는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구축된 것이다. 미국은 동맹을 강화하고 이념적 정렬(alignment)을 유도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무역 불균형이나 재정적 손실을 감수해 왔다. 즉 과거 미국은 경제 논리보다 안보와 이념 동맹을 더 우선시해왔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안보나 군사적 고려보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경제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주창하는 ‘America First’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심지어 미국은 이념적으로 반대 노선을 걸어온 중국과 러시아와도 경제적 이익에 부합한다면 언제든 거래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물론 미국이 다자주의를 전면 폐기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필요에 따라 다자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전략적 실용주의’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주 대륙만으로 미국의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분명 한계가 있다. 따라서 세계화(globalism)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나 그 인접 국가처럼 전략적인 중요성이 높은 사례에 국한해 지정학적 고려가 중심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제 미국의 글로벌 경제 전략은 ‘전면적 개입’에서 ‘선별적·전략적 개입’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질서 관리자’를 자처하지 않으며 자국 중심의 실익을 기준으로 지역별 지정학적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주요 블록이 독자적인 지역 동맹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을 재구성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주요 지정학적 요소는 무엇인가?

경제란 본질적으로 상호 이익을 전제로 한 자원과 자본의 교환 활동이다. 오늘날 운송 기술의 발달로 지역 간 무역의 효율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역이 철저히 지역 중심으로만 재편될 것이라 단정하긴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 역시 북미 지역만으로는 필요한 자원을 모두 조달하거나 내수시장만으로 모든 제품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물론 지역 간 무역은 운송비용 절감이라는 장점이 있으나 이것이 공급망 재편의 절대적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결국 기업들이 공급망 전략을 수립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경제적 합리성’이다. 다시 말해 적절한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면 해당 공급처가 지역 내에 있는지 여부는 그 자체로 결정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은 글로벌 무역을 지속할 것이다. 다만 과거처럼 무역이 지정학적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고 무역의 목적은 더욱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을 재구성할 때 고려해야 할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무역 상대국의 정치적 안정성과 경제적 역량을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 공급망이 통과하는 제3국들 역시 신뢰할 수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모든 무역에는 리스크가 따르며 대개는 경제적 요인에 기반하지만 내부 불안정성, 국제 분쟁, 전략적 요충지(choke point) 차단 등 비경제적 요인으로도 공급망 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무역 제한 조치와 안보 위협이 증가하면서 많은 기업이 무역 경로를 다변화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비경제적 변수 역시 글로벌 무역 접근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관세 갈등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미국은 오랜 시간 중국산 저가 제품의 수입을 통해 상당한 소비자 혜택을 누려왔다. 미국 내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었고,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비용 절감은 동시에 미국 내 산업 기반과 고용 구조에 큰 충격을 안겼다.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일자리 감소, 중산층 해체 등 구조적 부작용이 동반된 것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오일 쇼크를 통해 핵심 자원을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자원의 ‘정치적 무기화’는 단지 공급 차질에 그치지 않고 전체 경제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는 지정학적 충격으로 이어진다는 교훈이었다. 현재 미국의 중국산 제품 의존 구조는 이와 유사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정치적 결정, 중국 내부의 불안정성, 자연재해 등의 변수에 따라 언제든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구조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 위에 세워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화 여부와 관계없이 리스크 자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전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하나의 국가, 특히 전략적 긴장이 존재하는 국가로부터의 과도한 수입 의존은 가능한 회피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재정적 손익 계산을 넘어선 문제다. 안보와 공급망의 지속가능성, 글로벌 복원력 확보라는 근본적인 기준에서 판단해야 한다.

싸다고 쓰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공급망 설계 단계에서부터 정치적 리스크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반영해야 한다. 미·중 간의 관세 갈등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공급 안정성과 국가 전략의 교차점에서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장기적인 구조 전환의 신호다. 기업들이 지금 당장 ‘대응 가능한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다음 위기는 예측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저서『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The Storm Before the Calm)』에서 미국의 패권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더 설명해달라.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지정학적 이점을 가진 국가다. 북쪽의 캐나다와 남쪽의 멕시코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적으로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아 침략당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두 대양에 의해 자연 방어선을 갖춘 셈이다. 이 해양 경계선은 단순한 지리적 장점이 아니라 미국이 수립해 온 안보 전략의 핵심 토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은 전통적으로 ‘비개입주의(non-interventionism)’를 선호해왔다. 실제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미국은 독일 잠수함이 대서양에서 자국 상선을 공격할 때까지 중립을 유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영국 해군력까지 위협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영국에 무기와 자원을 제공하는 ‘무장 지원’에 나섰고 직접 참전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후에야 결정됐다. 미국이 독일에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선전포고에 응하는 형태였다는 점은 그들의 전략적 신중함을 보여준다. 냉전시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지정학 전략은 러시아의 대서양 진출과 중국의 태평양 확장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해양 패권을 둘러싼 견제 구도가 형성되면서 미국은 단순히 영토를 방어하는 수준을 넘어 전 세계 질서 유지에 깊이 관여하는 패권국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이 글로벌 개입은 막대한 생명과 경제적 대가를 요구해왔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주도의 정책 기조는 이러한 부담에 대해 근본적 재검토하겠다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 본토에 즉각적이고 명백한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고비용의 패권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을 확인한 것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예외적 시기를 지나 미국이 본래의 ‘선택적 개입’ 또는 ‘전략적 비개입’ 기조로 회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미국의 전략 변화는 전 세계 기업의 글로벌 전략에도 구조적 전환을 요구한다. 더 이상 기업은 ‘안정적 세계화’라는 전제 위에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의 글로벌 개입 후퇴 움직임은 기업 경영의 핵심 축을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에서 ‘자기 생존력(self-reliance)’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재생에너지 같은 전략 산업에서 한국 기업이 특히 주의해야 할 지정학적 함정은 무엇인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재생에너지와 같은 전략 기술 산업은 단순한 수출 상품을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 자립성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은 자국의 전략적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 중국산 핵심 부품과 소재에 대한 의존도를 체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 기업들에 단기적으로는 도전일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분명히 기회가 될 수 있다. 우선 한국은 중국과 달리 미국의 동맹국이자 기술 신뢰도가 높은 파트너로 간주되기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 국면에서 지정학적 신뢰도라는 무형 자산을 갖춘 국가다. 다시 말해 한국 제품은 중국만큼 싸지는 않지만 미국 내 생산만큼 비싸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정치적 리스크가 낮은 공급처로서 부각된다.

즉 최근 미국 행정부의 기조를 감안할 때 공급 안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가격경쟁력을 보완할 수 있는 시대가 왔고 이것이 한국엔 곧 기회라는 의미다. 물론 한국의 인건비와 제조 원가는 중국 대비 높기 때문에 저비용 구조의 경쟁은 어렵다. 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낮은 공급망 확보가 기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지금 미국은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피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품질을 갖춘 제품을 찾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 한국이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기업들은 몇 가지 주요 리스크를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우선 미국 등 주요국에서 대규모 경제 침체가 발생할 경우 무역 접근성이 제한될 수 있다. 또한 과도한 수입품 유입으로 인한 국내 노동시장 충격이 정치적 반발을 불러일으켜 새로운 교역 장벽이 등장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은 국가 간 지정학적 리스크뿐 아니라 각국 내부의 정치적 변화에도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국제 무역 환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끊임없이 변동하기 때문에 높은 유연성을 갖춘 전략적 대응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한국 기업이 집중해야 할 것은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공급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제도적·전략적으로 강화하는 작업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및 경쟁 구도 사이에서 한국 기업들은 어떤 방식으로 실행 가능한 ‘균형 전략(balance strategy)’을 설계해야 할까.

나는 중국의 내부 안정성에 대해 큰 의문을 품고 있다. 중국 내륙의 수억 인구는 여전히 부유한 해안 지역과 비교해 현격히 열악한 수준이다. 마오쩌둥이 장정(長征)으로 불평등과 빈노에 분노한 민중 봉기를 이끌었던 역사가 있지만 당시 조건은 오늘날까지도 크게 해소되지 않았다고 본다. 즉 중국 전체에 10억 명 가까운 빈곤층이 있는 상태인 만큼 중국 체제에 비판하는 내부적인 사회적 폭발 가능성이 사실상 잠재돼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난 40년간 이어진 중국의 경제 성장도 사실상 미국의 수입 및 투자에 기반한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중국 경제가 조만간 10억 명의 저소득층을 안은 채 성숙기에 진입할 전망이라는 사실이다. 성장이 멈추는 순간 중국에선 사회적 불안정성이 급격히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구조적 리스크는 한국에 오히려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는 중국에 인접해 있지만 전략적으로는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의 핵심이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의 독립성과 북한 견제를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조차도 북한의 비핵화를 원할 가능성이 있다.

즉 미국에 있어 한국은 단지 경제 파트너가 아니라 태평양 전략의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뜻이다. 이에 한국 기업과 정부에 다음의 세 가지 균형 원칙을 실천할 것을 제언하고 싶다. 첫째, 미국과의 전략적 연계를 중심축으로 삼고 둘째, 중국과는 신중하고 유연한 거리를 유지하며 셋째, 경제 관계는 철저히 다변화해야 한다. 나는 이를 ‘한국형 균형 전략의 핵심 3원칙’이라고 부르고 싶다. 중국과의 근접성과 미국과의 전략적 연계성이라는 이중 좌표 안에서 한국은 위기와 기회의 교차점에 서 있다. 이 좌표에서 가장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업과 정부가 다음 질서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GettyImages-jv14172837



다자주의가 약화되고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반드시 채택해야 할 근본적인 전략 원칙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대형 고객, 특정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다. 단일 고객이나 특정 국가에 집중된 매출 구조는 그 시장이 흔들릴 경우 기업 전체가 동반 추락할 수 있는 치명적 리스크가 생긴다. 사업에서는 오래 유지되는 파트너도 있지만 대부분의 고객은 유동적이다. 외교관계도 마찬가지다. 전략적 동반자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기업은 주요 고객이나 국가의 정책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체 생존력을 갖춰야 한다. 다자 구조(multilateralism)는 이상적인 환경이지만 환경이 언제든 일방주의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제를 놓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과거 수십 년간 유지되던 국제 경제 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고정된 구조 위에 세워졌으나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었다. 지금의 세계는 더욱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예측 가능성에 의존했던 전략은 이제 무력화됐다. 한국 기업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은 바로 ‘민첩성(agility)’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불확실성이 상수화된 시대, 위기를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얼마나 빠르게 회복하고 전환할 수 있는지가 기업 생존과 경쟁력을 결정짓는다. 따라서 이제는 다음과 같은 전략 전환이 요구된다. 먼저 지정학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통적으로 안정적으로 여겨졌던 지역도 언제든 리스크 지역이 될 수 있다. 또한 조직 내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각국의 지정학적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정치 리스크 인텔리전스’를 내재화해야 한다. 더불어 시장과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 특정 고객이나 지역을 상실하더라도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규 시장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다변화하는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정학과 산업 데이터를 융합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제 정치적 데이터를 고려하지 않은 글로벌 전략은 현실성이 없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예측보다 대응이, 정체성보다 유연성이, 집중보다 다변화가 생존 전략이 되는 시대가 왔다.

GettyImages-1394628847_[변환됨]



앞으로 5~10년 동안 지정학적 변화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은?

가장 큰 지정학적 변화를 겪을 지역으로 유럽, 중동, 아시아 전체를 꼽고 싶다. 유럽의 경우 통합 블록으로서의 유지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유럽 합중국’을 지향하는 평화적 이상주의 실험이라 할 수 있지만 실제 각국의 정치적 역학과 경제적 이해관계는 그 이상을 위협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통합을 위해선 정치, 재정, 안보라는 세 축이 모두 일관되게 결합돼야 하지만 현재는 오히려 해체 방향으로 가는 신호가 더 많다. 최근의 브렉시트, 각국의 우경화 조짐, 재정 정책의 분열 등은 EU 체제가 커다란 조정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중동 역시 구조적 변화의 중심에 있다. 과거 중동은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무대로서 시리아·이란·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등을 둘러싼 지정학적 충돌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러 간 관계가 덜 적대적으로 변화하면서 중동 내 동맹 구도도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는 자국 중심 외교와 에너지 전략을 통해 주도권 확보에 나서며 중동의 새로운 질서 재편을 이끄는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 두 가지 질문이 핵심이다. 첫째, 중국은 과연 내부의 경제적 불균형과 사회적 긴장을 극복하고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중국 내륙과 해안 지역 간 경제 격차, 중산층 정체, 청년 실업 문제는 만성화되고 있다. 또한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둔화되고 있으며 일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 복합적인 구조를 어떻게 감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둘째, 인도는 국가적 통합을 지속하며 향후 수십 년 내 중국을 능가하는 글로벌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 인도는 세계 최대 인구와 빠른 성장률을 바탕으로 미래 초강대국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종교, 계층, 지역 간 갈등과 같은 내부 분열 요소가 상존하는 만큼 이를 제어하고 국가적 통합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향후 글로벌 리더십 확보의 관건이다.

이에 더해 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중견국들의 성장 가능성 역시 중요하다. 특히 베트남은 글로벌 기업의 탈중국 전략 속에서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전략의 수혜지로 부상하면서 제조 기반과 공급망 안정성, 정치적 안정성을 무기로 향후 수십 년 내 한국 수준의 경제력에 근접할 수 있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20~30년 동안 통용됐던 지정학적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새로운 국제질서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외부 불확실성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려는 각국 국민들의 욕구가 있다. 이런 흐름은 세계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으며 교역 상대국 국민 여론의 변화는 내부 수요뿐 아니라 무역 장벽의 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기업들은 교역 대상국의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국민적 정서는 특정 이념을 넘어 모든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변수이며 결국 기업의 시장 접근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적 분열(global fragmentation)이 심화되는 가운데 다국적 기업들은 현지화와 글로벌 통합(global integration)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세계가 분열되고 있다는 표현보다는 훨씬 더 빠르게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지정학적 관계는 여전히 고정된 구조를 유지할 수 있지만 경제 관계는 해마다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현재 상황을 ‘분열의 위기’로만 해석하기보다 ‘빠르게 재편되는 시장 질서’로 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냉전의 종식과 미·러 간 경쟁의 약화는 기존의 양극 체제 고정 질서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 변화를 단순히 ‘세계화의 붕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계속해서 관계와 질서가 새롭게 형성되고 재구성되는 ‘진화하는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냉전기처럼 질서가 고정돼 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며 지금은 다양한 블록과 네트워크가 끊임없이 조정되고 재편되는 유동적인 질서 속에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업들은 지나치게 과거의 고정적 구도에 의존하기보다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민첩한 대응과 유연한 전략 구성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 통합 전략과 단기적 현지화 전략을 병행하며 분열이 아닌 재구성의 흐름에 주목하는 통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북한이라는 복잡한 네 개의 주요 지정학 축 사이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전략을 수립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핵심 리스크는 무엇인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외교·안보 측면에서의 압박인 동시에 전략적 기회의 창을 제공한다.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추진하는 핵심 전략은 중국의 해양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섬 방어선(cordon)’의 구축이며 이는 이미 일정 부분 실현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략 환경은 한국과 일본의 안보적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한반도는 미국의 태평양 전략을 뒷받침하는 핵심 거점이며 그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직접 받을 가능성도 낮다고 본다. 이에 한국 기업들은 중국발 리스크를 과도하게 우려하기보다는 미·중 관계에서의 자국의 상대적 전략 가치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 미국과 중국 간의 전면적 군사 충돌 가능성은 낮다. 양국 모두 경제적 실익을 위해 일정 수준의 관계 유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은 ‘약화된 중국’이라는 새로운 전제를 전략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중국 내수 둔화, 외국인 투자 유출, 글로벌 신뢰도 하락 등 구조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이에 기반한 포트폴리오 분산과 지역 전략의 정비가 요구된다. 특히 미국 중심 전략과 중국 중심 전략을 병렬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이원화된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양립 가능한 복수의 전략 경로를 설정하는 것이다. 향후 중국이 보다 온건하고 예측 가능한 외교 노선을 취할 경우 한반도 주변의 긴장 완화와 함께 지정학적 환경이 재편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무역은 지정학 논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모든 당사국에 실익이 존재하는 한 거래는 계속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단일한 위협 인식이 아닌 다층적 변수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전략 역량을 키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비즈니스 리더와 경영진에게 당부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미 언급했듯 미국이 본래부터 전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가가 되기를 지향한 국가는 아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체제의 형성 과정 속에서 불가피하게 세계 질서의 관리자로 나섰던 측면이 크다. 그러나 본래 미국의 전략적 지향점은 ‘북미 요새(North American Fortress)’라는 비전에 가깝다. 즉 대양을 경계로 한 자급자족형 안보와 경제 시스템, 지역 중심의 자율 전략을 선호해왔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미국이 세계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겠지만 일정 수준의 조정과 선택적 관여는 계속될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 한국은 단지 경제 파트너를 넘어 미국의 태평양 전략을 지탱하는 지정학적 핵심 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미국은 이 방어선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 중요성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간 갈등은 점차 이해관계 조정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과거와 같은 격한 대결 구도보다는 실용적 협상의 여지가 확대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은 단일한 전략을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전제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민첩성이 요구된다. 한국 기업들이 여러 가능성을 상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이원적 전략 체계를 준비할수록 글로벌 질서의 변화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기기사
DBR AI

아티클 AI요약 보기

30초 컷!
원문을 AI 요약본으로 먼저 빠르게 핵심을 파악해보세요. 정보 서칭 시간이 단축됩니다!

Click!